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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라이즈 군산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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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혁신 거점

어제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을 준비한다. 다양한 로컬창업가들이 모여 군산에 쌓여있는 과거의 조각들을 모으고, 사람과 공간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시끌벅적한 일들을 작당하는 곳.
밤낮 없이 영화동을 밝히며 군산의 미래와 군산에서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옛 조선은행
(군산근대건축관)
  • 옛 조선은행(군산근대건축관)
  • 옛 조선은행(군산근대건축관)
  • 옛 조선은행(군산근대건축관)
  • 옛 조선은행(군산근대건축관)
  • 옛 조선은행(군산근대건축관)

일제시대 쌀 반출을 위해 세워진

아픈 과거의 건물

이 동네의 이름은 장미동. 꽃에서 따온 아름다운 이름 같지만 실제로는 창고 장에 쌀 미, 쌀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눈 앞의 이 큰 길이 바로 일제 강점기 시절, 전라도 지역의 쌀을 일본에 수탈당한 주요 이동도로였습니다.
길 건너 바닷가에 항구가 있었고, 이 앞에 쭉 정미소, 쌀 보관 창고 등이 있었어요.
지금 우리 앞의 이 건물은 일제시기 조선은행이었어요. 좌측의 초록 색 지붕 건물도 나가사키 18은행이라는 일본 은행이었습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주인공인 태수가 근무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모두 일본 쌀 반출 등을 위한 은행건물로 슬픈 역사가 서린 곳입니다.
사실 이 조선은행 건물은 지금은 번듯한 모습으로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지만, 해방 이후에 한국은행, 한일은행으로 이용되다 개인에게 팔려서 예식장->나이트클럽->노래방으로 용도가 변경되며 운영되다 방치되었던 곳이었어요. 그러다 건물의 건축성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 되며 보수/복원 작업을 거쳐 지급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군산의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 중에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군산의 바다

앞에 보시면 바다죠. 군산은 항구도시입니다. 도심이 바다 가까이 붙어있지요. 여기는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입니다. 군산 안 쪽에 있어서 내항이라고도 해요. 우측 멀리 기둥같이 보이는 것이 금강 하구둑입니다. 왼쪽의 대교는 충남 서천으로 연결되는 동백대교에요. 그 왼쪽으로는 서해입니다. 예전에는 많은 쌀들이 바로 이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운반되었던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곳이지만, 지금은 내항에 퇴적물이 많이 쌓여 큰 배는 들어오지 못 한다고 합니다. 항구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지요. 건너서 보이는 곳이 충남 서천입니다.
군산은 고려시대부터 굉장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어요. 그래서 바다를 지키던 그 모습을 진포해양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옛 호남제분창고
  • 옛 호남제분창고
  • 옛 호남제분창고
  • 옛 호남제분창고

군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창고 건물

이 건물은 1930년대 일본인 소유의 상점 건물이었어요.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관리되던 곳을 이용구 씨가 매입하여 호남제분 공장을 설립하고 밀가루를 생산했습니다. 이때 이 호남제분 관사로 매입한 건물이 유명한 신흥동 히로스 가옥입니다. 타짜에서 평경장이 살던, 일본식 정원이 예쁜 집으로 유명하지요.
이 건물은 군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창고 건물이자 우리나라에서는 군산과 부산, 인천에만 남아 형태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옛 선유도행 도선장
  • 옛 선유도행 도선장
  • 옛 선유도행 도선장
  • 옛 선유도행 도선장
  • 옛 선유도행 도선장

군산의 섬을 연결해주던 통로

신선이 노닐다가 갔다던 섬은 오로지 뱃길만이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은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군도로 불리지만 군산은 본래 섬들의 이름. 군산의 진정한 모습은 섬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제는 육로가 개통되어 마치 육지처럼 되어버린 섬이지만 군산의 진정한 곳을 찾아가는 그 시작, 도선장에서 있었을 사람들의 기대와 설렘을 돌아본다.
바다 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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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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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로 흘러가는 금강의 여정이 마침표를 찍는 곳

민물이 산을 지나고 논을 만나 탁류(濁流)가 되어서 인지 흐리기는 하지만 도시와 도시를, 사람과 사람을 만나 이어온 강의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내는 탁월한 운치는 무엇과 비교 할 수 없다.
오래된 바닷가 뒷골목 풍경은 쓸쓸함을 풍겨내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진한 정내를 알아본 이들은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아내 오래도록 간직하는 군산의 바다 뒷길
째보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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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번성했던 포구

‘째보’라는 이름이 주는 정겨움은 오랜 포구의 화려했던 과거를 기억하기에 충분하므로 사람을 놀리는 이름인지, 모양을 빗대어 부른 이름인지는 중요치 않을 것.
지금은 복개되어 단조로운 해안선이지만 예전 자유롭게 펼쳐 있던 지형처럼 째보의 공간들은 쇠락을 거듭하고 새로운 시도를 기다리고 있다.
쇠퇴한 공간 째보이지만 그 이름처럼 갈래갈래 나뉘어져 다양한 기운으로 뻗어나갈 상상력을 펼쳐 본다.
중동 99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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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사람들의 삶의 민낯 99골목

얼기설기 얽혀 있는 좁은 골목길은 숨바꼭질 하던 꼬마가 어엿한 어른이 되는 세월에도 그대로다.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던 무수한 신령들은 하얗고 붉은 기만 펄럭인 채 남아 있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은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던 우리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군산 어촌의 중심마을. 물고기 잡아 하루를 살아갔던 시절 군산사람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하는 골목.
아직도 숨바꼭질하던 꼬마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던 이웃의 정이 배어 있는 조용한 동네 골목.
서래포구
  • 서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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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가는 포구

경포천(京浦川). 서울로 가기위한 하천에 있었던 서래포구. 그만큼이나 조선시대 어업이 가장 활발했던 어촌마을.
‘음식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어부 아저씨들은 배에 달았던 만선기를 빼 들고 당산제로 갑니다. 정성껏 만든 제사상에 올릴 음식도 지게에 그득하게 싣고 흥겹게 노래하며 올라가요.’
지금은 그 물길과 화려했던 시절은 잊혀진지 오래이지만 당시 만선을 기원하며 바삐 살아왔던 어부 아저씨들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오산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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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에 담겨있는 포구의 배 한척

서래포구의 매력을 한껏 더해주는 카페 오산상회.
포구가 성황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듯 어업 관련 물품을 판매하던 커다란 선구점 오산상회는 카운터에 걸려 있는 커다란 닻이 이목을 집중 시킨다.
한 쪽 벽면을 전부 채우고 있는 LP판 때문인지 과거로의 추억 여행이 수월하다. 카페 곳곳을 둘러보면 서래포구에서 열심히 생선을 실어 날랐을 어부들의 진한 향기가 느껴질 듯 배 한 척의 흔적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루프탑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과 고소한 스콘을 베어 물며 바라보는 포구의 풍경은 오산상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군산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경암동 철길마을
  • 경암동 철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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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주민들 삶 깊숙이 운행되던 기찻길

기차가 지나간다.
앞마당에 뛰어놀던 영희와 철수, 누렁이는 역무원의 호루라기 소리에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가고, 어머니는 널어놓은 빨래를 걷기에 정신이 없다.
어머니의 꾸중을 듣지 않으려면 기차가 다 지나갈 때 까지 흔들리는 집안에서 잠잖고 있어야 한다. 양팔을 벌리면 닿을 듯 한 좁은 길차길 사이에 빼곡히 붙어 있는 집 사이로 지나던 기찻길의 흔한 풍경이 사라진 건 불과 10여 년 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살아남기 위해 지어진 판잣집들 사이에 다니던 기차는 이제는 없다.
제지회사로 향하던 운반 기차가 다니던 철도라 종이 철도라고도 불리었다는 기찻길은 추억을 찍는 여행객의 종이 한 장 위에 그림처럼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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